머니 : 도전과 나눔으로 인생의 행복퍼즐을 맞추다(2015.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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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천년의미소 댓글 0건 조회 4,469회 작성일 15-01-14 21:39본문
인생의 세찬 폭풍우가 물러가고 남겨진 선물 같은 ‘은퇴 이후 삶’의 가장 큰 가치는 무엇일까.
67세의 사막 마라토너 우헌기 아름다운 유산 재단 이사장은 계획대로만 살아온 인생에 새로운 도전으로 ‘나눔’의 삶을 실천한다.
노년의 평안함과 여유 대신 사막과 고산지대를 가르는 ‘뜀박질’은 심심파적 취미가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한 가치 있는 유산이기에 더 아름답다.
우헌기(67) 아름다운 유산 재단 이사장은 2014년 11월 한 달을 아르헨티나 북부 안데스 산맥 고산지대에서 지냈다. 그곳에서 ‘푸나 잉카 트레일 울트라 마라톤’에 참가했다. 잉카 트레일은 옛 잉카제국 구석구석을 잇는 교역로로 이곳에서 일주일 동안 해발 2700~4400m에 자리 잡은 사막 200km를 완주하는 데 성공했다. 정확히는 아르헨티나 북서부의 푸나 델 아타카마 사막(Puna del Atacama)으로 일반인은 조금만 걸어도 고산 증세로 힘든 이곳을 7일간 시속 6km 속도로 뛰거나 걸었는데 더 놀라운 건 이번 도전이 처음이 아니란 사실이다.
2011년 이집트 사하라 사막을 시작으로 지난 4년여간 극지 사막 마라톤에 입문한 그는 2012년 미국 애리조나 사막, 2013년에는 나미비아 나미브 사막을 완주하며 쉽지 않은 도전을 이어왔다. 특히 지난 잉카 트레일 울트라 마라톤은 고산지역의 특성상 대회에 나가기 며칠 전까지도 고민이 많았다. 뙤약볕이 쏟아지는 황량한 흙길과 소금사막을 걸었을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하며 그 지리한 시간을 견뎠을까 하는 물음은 우문일지 모른다.
1km를 달릴 때마다 학교 동창, 회사 동료 등 주변에서 성금 100원씩을 모금했다. 이렇게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2013년 파키스탄 북부에 고아원을 지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딛는 자신의 두 다리가 파키스탄의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나눔의 씨앗이 될 테니 사막 한가운데의 길이 외로운지도 힘든지도 몰랐다. 악전고투로 새겨졌을 법한 마라톤 여정에 대해 주변 사람 열에 아홉은 “그 힘든 걸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 온다지만 그는 딱 잘라 말한다. “내가 좋아서 하니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베테랑 마라토너지만 매번 쉽지 않은 도전의 결실은 그간 꾸준히 중앙아시아 어린이들을 위한 기부로 이어져 왔고 2014년에는 사단법인 ‘아름다운 유산’ 재단이 공식 출범했다. 개인 인맥에 기댄 나눔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기부를 시작한 이래 파키스탄 아이들의 삶을 바로 가까이서 지켜보며 돈으로 하는 물질적인 기부만큼이나 그들 삶에 ‘희망’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시작했던 나눔은 그렇듯 다음 세대에까지 뿌리내릴 수 있는 희망을 심는 데까지 성장했다. ‘아름다운 유산’ 재단이 중앙아시아의 소외된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사업에 역점을 두고 출발한 건 그 연장선인 셈이다.
도전과 용기로 아로새긴 ‘청춘’의 중년
과연 ‘죽음의 레이스’라고 불리는 극지 마라톤대회를 수차례 완주했을까 싶을 정도로 우 이사장의 첫인상은 ‘평범’했다. 한눈에 봐도 60대 후반 중년의 모습이었다. 우 이사장은 인터뷰하러 오는 길에 후배에게서 전화를 받았다고 말을 뗐다. “친한 후배가 곧 암 수술을 받는다고 전화가 왔는데 사실 내 나이 정도 되면 내게 당장 이런 병이 생겨도 놀랄 일도 아니지만요”라며 허허 웃는다. 살아온 삶의 햇수만큼 크고 작은 잦은 풍파에 의연할 수 있는 마음그릇도 함께 넉넉해지면 좋으련만 어디 쉬운 일인가. 삶을 관조하는 우 이사장의 여유 넘치는 성품이 엿보이는 대목이었으나 그의 중년은 ‘삶의 안정기’로 대변되는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는 탄탄대로를 걷던 고위공직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뜻밖의 계기로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게 됐다.
“국가에서 일하다가 정권이 교체되면서 제 뜻과 상관없이 밀려나오게 됐습니다. 그때 제가 쉰셋이었죠. 제가 일하던 조직이 다른 부처처럼 대민 업무도 없었거든요. 온실 중 온실에서만 살아오던 제가 갑자기 일자리를 잃고 나서 망연자실했지만 뭐라도 해야 했죠. ‘내가 그동안 너무 안락한 삶만 살아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요. 당시에는 어디 갈 데도 없었지만 스스로 ‘나도 지독하게 생고생을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어요. 아는 사람이 용산 전자상가에서 가게를 운영해 그곳에서 1년간 영업이라는 걸 했지요. 그러던 중 한 친구가 회사를 맡아달라고 연락이 왔지요. 제 생각엔 이 친구가 고위공직에 있던 제가 밑바닥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뭐라도 배우려고 한 자세를 좋게 본 모양이에요. ‘과연 잘 할까’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같이 해보자고 제안해 온 거죠. 난 바로 사장 자리를 주는 줄 알았는데 상무 자리부터 주더라고요.(웃음)”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처음부터 사장 직책을 맡았다면 직원들이 그저 자리 좀 지키다가 나갈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테고, 만날 앉아서 도장만 찍는 사람이 됐을 거라고 회고했다. 그렇게 실무를 직접 챙기는 상무 자리부터 시작해서 대표를 역임하며 택산상역이라는 의료용 현미경 수입·판매업체에서 11년을 일하고 은퇴했다. 당시에는 일본의 올림푸스 현미경을 국내에서 독점 수입하는 회사였지만 회사 매출이 급격하게 신장하면서 현재는 일본 본사에서 독점권을 철수해 갔다.
공직 생활을 접고 전혀 새로운 길을 걸어온 그의 인생행로는 도전과 열정이라는 키워드가 관통한다. “끊임없는 도전이 두려울 때도 있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데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반문하면서도 “난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포츠 마니아가 된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우 이사장은 극한의 스포츠를 즐기는 것으로 주변에서 유명하다. 한겨울에 설악산에서 빙벽등반을 하는가 하면 미국 요세미티국립공원에서 암벽등반, 출장길에 주말을 붙여 스위스 마테호른에 가 홀로 스키를 즐겼던 것은 예사다. 스쿠버다이빙, 트레킹에 익스트림 스포츠라 일컫는 크로스컨트리 스키나 자전거 하이킹까지 즐긴다니 체력을 타고 나서 그 나이에도 가능한가 싶지만 정반대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심한 약골이었다. 학창시절에는 수학여행이나 소풍도 포기했을 만큼 허약해서 대학교에 입학한 뒤 굳은 결심을 했단다.
“남들은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해야지’ 했을 때 저는 ‘운동 열심히 해서 체력을 키워야지’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서울대에 입학한 뒤 산악부 동호회 활동을 시작하고 2~3년 주기로 종목을 바꿔가며 취미삼아 여러 운동을 해왔죠. 그렇게 40년 넘게 운동을 해오다 보니 새로운 것을 배우고 부딪치고 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주머니에서 나오는 나눔이 아닌 희망의 씨앗 파종
이 같은 우 이사장의 도전은 그가 들려준 2013년 푸나 잉카 트레일 여행 이야기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그는 이 여행에서 세 가지 원칙을 세웠는데 첫째는 왕복 비행기 티켓 외에 아무것도 미리 준비하지 않고 떠나는 순수한 의미의 배낭여행을 계획한 것, 둘째는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 대신 수채화 그림을 그려 남기자는 것,셋째는 동영상을 찍어 추억을 담아오자는 것이었다. 패키지여행이 주는 효율성은 배낭여행에 비해 편리하고 효율적이겠지만 낯선 타국에서 버스를 놓쳐 그날 일정이 모조리 헝클어지고 오늘밤 당장 몸을 누일 호텔 방을 알아보러 다니는 경험은 돈을 주고도 못 하기 때문이다.
우 이사장에게는 삶을 기둥처럼 받치고 있는 세 가지 정신이 있다. 도전(Challenge), 자선 (Charity), 행복(Happiness)을 요약해 만든 ‘C2H’가 그것. ‘도전’과 ‘자선’은 누구나 마음속에는 품고 있지만 쉽게 시작하기도, 지속적으로 실천하기도 힘든 인생의 숙제처럼 여겨진다. 현실이 발목을 붙잡고 있어 도전은 젊어서나 가능하고 소외된 자들을 향한 부채감은 늘 마음 한쪽에 밀어두기 마련이니까. 그러기에 끊임없는 도전의 씨실과 뜨거운 열정이라는 날실이 엮여 완성된 그의 테피스트리 작품 같은 인생은 거기에 ‘나눔’이라는 가치를 더해 더욱 아름답게 빛이 날 수밖에 없다.
그의 나눔 여정은 사실 어찌 보면 특별한 계기나 거창한 동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어려운 이들을 돕고 싶은 막연한 마음 정도가 전부랄까. 중학생 때 슈바이처 박사의 책을 읽고 그 같은 삶을 꿈꿨고, 군대 시절 재건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는 했지만 내세울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 본격적인 나눔에 눈을 뜨게 된 건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였다.
“2004년에 의사인 친구 3명과 간호사 몇 명을 모집해 동티모르로 3박 4일간의 의료 봉사를 간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 후로도 주변에서 성금을 걷어 태국 방콕에 수재의연금을 보내거나 했지요. 먼저 기부금부터 모은 뒤 어디에 전달해야 하나 고민할 만큼 계획보다는 의욕으로 시작했던 때라 시행착오도 많이 했지요.”
그런 이유로 2007년부터는 지속적인 기부 활동과 나눔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산을 좋아하니 산골 사람을 돕자는 마음으로 먼저 네팔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서구권의 산악인들이 네팔을 많이 찾아 도움의 손길이 많이 퍼져 있었다. 상대적으로 관심과 온정의 손길이 닿기 힘든 지역인 파키스탄의 산골마을을 아는 이에게 소개받고 찾아갔다.
“파키스탄의 북부 카라콜룸 산맥에 위치한 발키스칸이라는 마을입니다. 2년이 넘는 시간을 들여 고아원을 지었지요. 처음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의 1950~1960년대 모습을 보고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겨울에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지고 그나마 그때는 운영비가 모자라 아이들을 친척집에 돌려보낸다고 하더군요.”
고아원을 증축하고 환경을 개선해준 뒤 자연스레 아이들은 물론 동네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느낀 그는 희망이 가져다주는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고 자연스레 물리적인 주거 환경만 도와줄 것이 아니라 ‘꿈과 희망’을 전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 지역 주부들의 문맹률이 95%에 육박합니다. 2014년 아름다운 유산 재단을 세우면서 가장 주력할 사업으로 ‘교육’을 꼽은 건 그래서죠.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나도 뭔가를 할 수 있다’, ‘희망을 갖고 배우면 부모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가치관을 심어줘야 합니다. 그 역할을 누가 하겠습니까. 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교육은 물론 그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어머니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구상 중입니다.”
은퇴 이후의 행복, ‘같이’의 가치에서 찾아라고단한 이들의 삶에 훈기를 전해주기 시작한 그는 이제 그 따스한 온기가 꺼지지 않도록 삶이라는 아궁이에 희망을 지펴줄 ‘땔감’에 주목하고 있다. 강원도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꿈 찾기 프로그램’, 어린이집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한 ‘아이 자존감 키우기’ 강연을 비롯해 은퇴를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토크 콘서트에 강연자로서 서는 것 또한 우 이사장이 걸어온 나눔 철학과 삶의 열정을 함께 보여주는 행보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다들 물어봐요. 남 돕는다고 훈련까지 해가며 그 힘든 마라톤을 왜하냐고요. 좋아서 하는 거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 마라톤이라고 답하지요. 은퇴 이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물어오는 질문도 많이 받습니다. 저는 비슷한 대답을 해요. 2~3년 뒤 뭔가 떡하니 내놓을 결과를 생각하지 말고 ‘내가 뭘 좋아하나’부터 스스로 물어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또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사람이 태반이에요. 그러니 늘 새로운 걸 시도해보고 뭐라도 배우려고 하는 마음이 중요해요. 중년이 되면 젊을 때보다 더 호기심을 갖고 이것저것 시도해야 할 이유가 이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차일피일 미루지 말고 머릿속에 뭔가 떠오르면 바로 실행해야 합니다. 여기에 하나 더 조언해줍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찾되 그것이 나만의 즐거움이 아닌 여러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 있는 일로 발전시키면 더없이 좋다는 것을요.”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이해인 수녀는 “실천”이라고 답했다. 머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당장 운동화 끈을 조여 묶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설 용기가 쌓인 결과로 우 이사장은 중앙아시아 지역 불우했던 아이들의 미래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게 됐다. 자전거를 타고 중국의 실크로드를 달리거나 알프스 산맥 트레킹을 2015년 새해 목표로 세웠다는 그는 곧 새로운 익스트림 스포츠에 도전할 계획이다. 스키를 타면서 눈 덮인 산을 내려오는 ‘산스키’에 도전하며 그는 또 어떤 새로운 꿈을 꾸고 있으려나.
우헌기 이사장의 은퇴 라이프 코칭
1 우리는 나이든 것이 최대 강점이다. 젊은 사람 부러워 말고 ‘나도 젊어봤어’ 하는 마인드로 자신감을 가져라.
2 작게 시작하되 당장 실천하라. 내가 뭘 좋아하는지 그것마저 떠오르지 않는다면 학창시절에 뭘 잘했는지, 혹은 미뤄두었던 하고 싶은 것을 바로 시작해라. 미루다간 아무것도 안 된다.
3 취미든, 새로운 일이든, 시작하는 순간에는 결과부터 그리지 마라. 대부분 2~3년 뒤의 모습을 상상하며 도전하는데 취미처럼 가볍게 시작해서 재미를 붙여라. 그래야 오래 즐기면서 할 수 있다.
4 나만 좋은 일 말고 여러 사람이 즐거울 수 있는 일을 찾아라.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이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기획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글 이지혜 객원기자│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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