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라 미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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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헌기 댓글 0건 조회 7,023회 작성일 15-12-08 18:24본문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저를 제일 난처하게 만드는 질문이 석굴암 불상이 간다라 영향을 받았느냐는 겁니다. 교과서에 그렇게 많이 쓰여있죠. 하지만 거기에는 무리한 점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사람 얼굴이니까 비슷해 보이는 것이지 실제로 비교해 보면 거리가 있습니다.그런데도 간다라 미술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심리 이면에는 우리가 간다라 미술을 훌륭하다고 여기는 정서가 심리 근저에 깔려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석굴암 불상의 높은 가치를 적절히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느끼는 것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불상이 처음 만들어진 원류가 간다라에 있다는 점에서 보자면, 모든 불상의 뿌리가 간다라에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양식으로 말하자면 석굴암 불상은 오히려 당나라 불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겠습니다. 당시에는 살지고 푸짐한 게 복스럽고 원만한 모습이라 생각했습니다.우리는 동과 서를 이야기할 때 융합, 교류를 말하고 둘 사이의 관계를 미화하거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상당한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심미적인 인식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서양인의 시선에서 시작된 불교 미술간다라에 흔히 매료되는 세 번째 배경은 연구 전통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서양인의 눈으로 봤을 때는 불교 미술에서 간다라의 불상이 가장 조각답고 미술의 범주에 넣기에도 손색이 없는 것으로 여겼진 거지요. 그런 점에서 간다라는 서양 고전 미술의 가장 동쪽 끝이라 할 만한 것이었습니다.학술적 의미의 근대적 불교 미술이란 것도 서양 사람들이 먼저 시작했습니다. 서양인들이 처음 간다라 미술을 알게 된 것은 1840~1850년인데, 두 명의 학자가 굉장히 중요한 책을 썼어요.
한 사람은 독일의 알버트 그륀베델(Albert Grünwedel, 1856-1935)인데, 중국 서쪽 신강성의 쿠차 지역 석굴 조사를 많이 했어요. 그는 1893년 ‘인도의 불교 미술’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의 주요 부분이 간다라 미술이었습니다.불교에 미술(Kunst)란 말을 붙여 쓴 게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전까지 서양인들은 간다라에서 나온 불상은 그냥 ‘우상(idol)’이라 부르고 미술이 아닌 민속학 유물 범주에 넣었어요.이런 상황에서 최초로 불교 미술이라 불린 범주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 간다라 미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불교 미술 연구의 시작이 바로 간다라 불상에 있었고, 그것만이 미술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출발할 때부터 있었던 겁니다.
다른 한 사람은 알프레드 푸쉐(Alfred Foucher, 1865-1952)라는 사람입니다. 푸셰는 1900년 ‘인도의 불교 도상 연구’라는 책을 냈고, 1905-1922년에 걸쳐 ‘간다라의 그리스풍 불교 미술’이라는 대작을 냈습니다. 그의 연구가 간다라 미술 연구의 기초를 놓았다고 할 수 있고, 후대 불교 미술 연구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또 에른스트 페놀로자(Ernest Fenollosa, 1853-1908)라는 미국인이 있는데, 이 사람은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은 1878년에 일본에 와서 제국미술학교에서 처음으로 미술사를 가르쳤어요.1912년에 ‘Epochs of Chinese and Japanese Art(중국과 일본 미술의 시대)’라는 책이 그의 유작으로 나왔는데, 이 책에 ‘중국의 그리스풍 불교 미술: 당 초기(Greco-Buddhist Art in China: Early Tang)’와 ‘일본의 그리스풍 불교 미술: 나라 시대(Greco-Buddhist Art in Japan: Nara Period)’라는 제목의 장(章)이 실려 있습니다.
동아시아 불교 미술에서도 비로소 인간의 모습을 그럴듯하게 표현하게 된 시대를 일컬어 동아시아의 그리스풍 불교 미술이라고 한 겁니다. 그런 생각이 뿌리내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 겁니다. 석굴암에 대한 인식도 그런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어요.따라서 저는 동과 서의 만남으로서 간다라의 매력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입니다. 서양 고전 미술의 시각에서 보자면 오히려 거칠고 퇴화한 지방 미술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거든요.그 나름의 독특한 맛이 있긴 하지만, 특별히 인도라거나 동아시아의 여러 곳에서 만들어진 불상에 비해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제가 너무 익숙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그런 눈으로 봐서 그렇지,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왼쪽은 3-4세기 간다라 지역의 불입상. 오른쪽은 기원전 340년경 로마시대 소포클레스 대리석상 /사계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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