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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라 미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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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헌기 댓글 0건 조회 7,417회 작성일 15-12-0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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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후 400-500년 사이, 동서양이 교차했던 인도 북부 간다라.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늘날 다채로운 불교 미술의 원류로 꼽히는 그곳 미술은 어떤 과정에서 생겨났고 어떻게 전파됐을까.
간다라 불상이 멀리 한반도 통일신라 석굴암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통념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간다라 미술의 권위자인 이주형 서울대 고고미술사학 교수의 저서 ‘간다라 미술’(사계절)과 저자의 강연 내용을 요약하여 싣는다.
 
[미니북] 왜 간다라 미술에 매료되는가
 
1. 간다라의 지역적 의미
 
간다라는 원래 간다리족이 사는 땅이라는 뜻이다. 간다리족은 인도 베다 시대(기원전 5-6세기)의 성전인 리그베다와 아타르베다에 이미 언급되었다. 이 종족이 정착했던 인도 서북 지역을 간다라라고 부르게 되었다.
간다라는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의 아키메데스 제국에 복속되었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이 이 지역에 왔을 때는 아키메데스 영역밖에 있었다. 한편 5세기 이후에 쓰인 불교경전에서 당시 인도를 지배하던 16대국을 언급할 때 빠짐없이 간다라를 언급하고 있어, 인도인들은 간다라를 페르시아가 아닌 인도의 일부로 여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문으로 번역된 불교 경전이나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의 문헌에도 간다라는 빈번히 언급되고 있다. 아키메데스 시대 이래 이들 문헌에서 간다라는 이미 지역적인 개념으로 정착되어 있었다.
 
간다라의 지역적 범위는 시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었다. 아키메데스 시대에는 오늘 날 아프가니스탄의 잘랄라바드 일대와 파키스탄의 페샤와르 분지, 탁실라를 포괄하는 지역을 가르켰다. 알렉산드 원정이 이후의 서양 고대 저술가들은 대부분 간다라를 인더스 강 서쪽에 국한시켜 페샤와르 분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중국 순례자들도 대체로 페샤와르 분지에 국한하여 사용했다.
 
하여튼 간다라의 중심지는 오늘날 파키스탄의 하이버와 페샤와르 일대 남북 70km, 동서 40km의 분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넓은 의미의 간다라 특히 우리가 '간다라 미술'이라고 할 때의 간다라는 페샤와르 분지뿐 아니라 그레코-로만 양식의 조각이 출토된 그 주변 지역의 여러 지역, 즉 서쪽의 카불 분지와 잘랄라바드, 북쪽의 스와트, 동남쪽 인더스 강 동안의 탁실라 일대를 포괄하는 의미로 쓰인다. 때로는 옥수스 강(지금의 아무다리야 강) 북쪽의 초원지대까지 간다라 미술의 범위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간다라의 심장부인 페샤와르 분지는 고래로 동서를 잇는 교통의 요지였다.여기서 서쪽을 하이버 고개를 넘으면 아프가니스탄의 잘랄라바드와 카불, 칸다하르, 헤라트를 거쳐 이란에 이르고, 다시 지중해에 닿는다. 또 카불에서 힌두쿠시를 넘어 북상하여 옥수스 강을 건너면 사마르칸트, 페르가나, 부하라, 메르브 등의 중앙아시아의 도시에 이르고, 여기서 다시 동과 서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샤카족, 쿠산족, 훈족 등 유목민들, 티무르(1336-1405)와 무갈왕조의 바부르(1486-1530)도 이 길을 통해서 인도로 들어왔다. 옥수스 강을 따라 와한 회랑으로 들어가 파미르를 넘어 흔히 서역이라 불리는 타림분지에 이를 수도 있다. 타림 분지에서 이 길은 동쪽으로 중국으로 이어졌는데, 현장 법사를 비롯한 중국의 구법승들이 이 길을 따라 인도를 왕래했다.
 
한편 페샤와르 분지에서 북쪽으로 부네르를 넘어 스와트나 치트랄을 거쳐 북상하여 서역에 갈 수도 있었다. 이 길도 중국의 구법승들이 애용했으며, 이 길을 통해 불경과 불상이 중국에 전해졌다. 남쪽으로는 페샤와르 분지에서 인더스 강을 건너면 탁실라에 이르고, 여기서 계속 동남쪽으로 내려가면 갠지스 강의 지류인 야무나 강에 접한 마투라에 이른다. 마투라에서 갠지스 강을 따라 계속 내려가면 인도 문명의 본거리라고 할 수 있는 고대 마가다 지방에 이른다. 마투라에서 방향을 달리하여 남쪽으로 내려가면 불고 석굴사원이 발달했던 데칸고원 서부에 이른다. 이와 같이 간다라는 사방으로 뻗어 있는 여러 갈래 길들의 접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중국 구법승들은 일관되게 이 곳을 인도의 영역으로 언급하고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곳은 문화, 풍토, 종족 등 여러 면에서 서아시아와 남아시아, 중앙 아시아적 요소를 골고루 지니고 있었다. 간다라는 그러한 여러 지역이 만나는 漸 이지대였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이 같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일찍이 기원전 1500년경 인도에 유입되었던 아리아인을 필두로 페르시아인, 그리스인, 인도인, 중앙아시아 출신의 샤카족, 쿠산족, 훈족, 돌궐족의 지배를 번갈아 받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다양한 민족과 문확가 혼재하며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었다.
 
간다라 미술은 이곳에서 기원 전부너 수세기에 걸쳐 번성했던 특이한 성격의 불교미술을 칭한다. 특이하다고 하는 이유는 이 미술의 주제가 대부분 인도에서 태동한 불교에 관한 것임에도, 그 조형양식은 놀랍게도 주제와 전혀 이질적인 서방의 지중해 세계에서 비롯된 헬레니즘, 로마풍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동방의 종교 전통과 서방의 고전미술 전통이 기묘하게 결합된 혼성미술이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지역 탈레반의 포격으로 폭파된 바미얀 서대불(왼쪽)과 동대불 /사계절 제공
▲ 2001년 아프가니스탄 지역 탈레반의 포격으로 폭파된 바미얀 서대불(왼쪽)과 동대불 /사계절 제공
 
 
[미니북] 왜 간다라 미술에 매료되는가
 
 왜 우리는 간다라 미술에 매료되는가?(아래는 저자의 강연 내용)
 
  첫 번째 살펴볼 것은 우리는 왜 간다라 미술에 매료되는가입니다. 이 물음은 제 책 마지막에 간단히 다룬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간다라 미술에 대해 적정 수준 이상으로 관심을 두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특히 일본 사람들은 간다라에 대한 심취가 대단합니다. 이 문제는 우선, 서양인들이 역사를 보는 낭만적인 시각과 관련이 있습니다. 제 책도 그런 시각에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상당 부분 서양인의 관점입니다. 우리가 은연중에 서양인들을 보면서 닮으려 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미니북] 왜 간다라 미술에 매료되는가
 
 이게 간다라 불상입니다. 간다라는 서력 기원 전후부터 4-5세기 동안 파키스탄 북쪽에서 유행한 미술입니다. 이 사진은 기원후 200년쯤에 만들어진 불상 머리, 불두(佛頭)입니다.서양 사람들이 왜 여기에 매료됐느냐. 서양의 근대 이후, 19-20세기에 걸쳐 특히 19세기에 서양 사람이 동방에 관심을 두는 데에는 알렉산더가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이란이나 인도 같은 동방에 관심을 두게 됐을 때 흔히 알렉산더를 통해 이쪽으로 접근했다는 말입니다. 특히 역사학자 중에 오렐 스타인(1862~1943, 탐험가) 같은 사람이 그랬어요. 많은 사람이 스타인처럼 어릴 때 알렉산더의 전기를 읽으면서 동쪽 세계, 인도를 꿈꾸고 이 지역에 대한 탐험이랄지 연구랄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알렉산더 대리석 두상 /사계절 제공
▲ 알렉산더 대리석 두상 /사계절 제공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은 334~326년경에 있었죠. 유라시아 역사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대사건이었습니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인데, 이건 확실히 서양 사람의 입장에서 본 역사 속에서 더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알렉산더 때만 해도 세계에 대한 지식이 크게 부족해서, 동쪽으로는 인도까지만 알았는데 인도마저 아주 조그맣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동쪽 중국은 전혀 몰랐고요. 중국을 알고 교류하게 된 것은 기원전후나 되어서였습니다. 그런 세계에서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은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고, 그 발길을 쫒아 근대 역사학자들도 탐험하게 됐죠. 간다라 미술도 그런 맥락에서 조명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알렉산더의 원정을 통해 그리스인들, 더 정확히 말하면 유럽에선 변방인 마케도니아인들이 아시아 서반부 곳곳에 정착했습니다. 그 중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북쪽과 지금 우즈베키스탄 남쪽의 박트리아라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을 거점으로 헬레니즘이 뿌리내렸던 거지요.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도 /사계절 제공
▲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도 /사계절 제공
 
박트리아에는 그리스인들 도시도 남아 있는데, 지중해 세계의 도시처럼 체육관도 있고 큰 반원형 극장도 있고, 궁전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학파 철학책의 단편도 출토됐습니다. 그런 바탕 위에서 그보다 조금 남쪽에 있는 간다라라는 지역에서 불교 미술이 나오게 됩니다.
 
자기가 사는 곳 이외 다른 지역에 관심을 두는 것은 제국주의와 관련이 있습니다. 근대기에 제국이 아니었던 나라 중에는 그렇게 자기 문화 이외 다른 여러 곳의 문화를 연구하는 전통이나 관습이 있는 곳이 별로 없어요. 영국, 프랑스가 바로 그런 제국이었고요, 일본은 한때 제국이 되려 했고, 미국은 제국이지요. 
 
서양 사람들이 서양 역사의 일부라는 면에서 간다라에 관심을 두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데, 일본 사람들이 이곳에 그토록 매료된 데에는 또 다른 맥락이 있지요. 그중에는 이 사람들이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불교 미술에 관한 지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도 서양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 같아요. 우리는 그런 일본의 영향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제가 관심 있는 것이 뭐냐면, 간다라의 불교 미술이나 불상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나 지식이 근대기에 어떻게 형성됐느냐는 거예요.
 
아프가니스탄 핫다의 불두 /사계절 제공
▲ 아프가니스탄 핫다의 불두 /사계절 제공
 
우리가 간다라 미술에 경도되는 것은 서양 고전주의에 익숙한 우리의 심미적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상적 형상의 사실적 조형을 목표로 삼았던 서양 고전주의의 심미적 이상이 우리에게도 이미 익숙하고 깊이 내면화돼 있다는 거지요. 동서양의 인간 조형을 비교해 보면, 형상의 입체성이나 그것의 재현 기술과 관행에서 서양 고전주의가 우월하고 더 인간적인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전통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우리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보이고, 서양인의 형상이나 조형은 오히려 이상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미니북] 왜 간다라 미술에 매료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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