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가 걸어간 그 길 ; 혜초와 발티스탄 > 자유게시판

 

해외 어린이를 돕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던 난 2011.11 사하라 사막 울트라 마라톤 참가를 계기로 도와줄 곳을 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모금부터 시작했다. 이듬 해 6월 난 지인의 소개로 파키스탄 북부 히말라야(카라코람) 산골 고아원(Hamdard Academy at Khaplu, Baltistan)을 방문했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이 5년째 이어오고 있다.

 

파키스탄 고아들을 돕는다고 하면, 첫 질문이 ‘왜 외국이냐, 국내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그 다음이 '왜 하필이면 파키스탄이냐?'이었다. 우리 경제의 해외의존도는 매우 높다. 이 말은 외국인들이 우리를 보는 시각에 우리의 미래가 많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 최근 한류, 세계적인 기업 등으로 국가 브랜드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개선의 여지는 아직도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사단법인 아름다운유산의 설립 목적인 외국인들의 대한민국과 한민족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데 일조하기 위해 해외 어린이들을 돕는 일을 시작했다.

 

파키스탄은 역사적으로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었느냐? 두 나라의 관계는 16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문화 예술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간다라 미술의 중심지가 바로 그 지역이다.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발달한 간다라 미술은 신라, 백제, 고려의 불교 미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384년 백제에 불교를 전해준 '북인도에서 온 마라난타'가 바로 그 지역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는 법성포로 들어와 백제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해줬다. 이를 기념하여 법성포에는 마라난타사가 있다.

 

 

혜초 스님은 왕오천축국전에서 소왕국 소발률(小勃律)에 대해 이렇게 기록해놓았다.

 

“다시 가섭마라다국에서 북서쪽으로 산을 넘어 이레를 가면 小勃律國에 이른다. 이 나라는 중국의 관할 아래 있다. 의상이나 풍속, 음식, 문화는 大勃律國과 비슷하다. 천으로 지은 옷과 가죽신을 신고 수염과 머리를 깎는다. 머리에는 면포 한 장을 두르며 여인들은 머리를 기른다. 가난한 자가 많고 부자는 적다. 산천이 협소하며 농사는 많이 짓지 않는다.”

 

역사 기록에 나오는 발률국과 오늘 날의 지명 발티스탄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발티스탄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과 자기들의 언어를 자기들을 발티라고 하고, ‘발티 사람들이 사는 곳’을 ‘발티율’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발률국은 발티율 즉 ‘발티 사람들의 나라’일거라고 꿰맞추니 그럴듯해 보인다.

 

혜초는 어떤 마음으로 이 곳을 지났을까? 시인 이승하는 이렇게 노래했다.

 

  하늘 아래 영원한 것 없더라도

  그대 꿈꾼 것은 영원이 아니었던가

  영원히 이어갈 부처의 말씀

  영원히 이어갈 길들의 종교

 

  그대 걸어갔던 그 길

  지금은 잡풀만 무성해도

  그때 그곳으로 사람이 걸어갔었다

  사람을 불쌍히 여겼던 사람이

  사람이 걸어간 길을 사랑했던 한 사람이

 

  가보지 않았는데 어찌 길이라 할 수 있으리

  그대 땀으로 썼던 두루마리 족자 하나

  천년이 넘는 시간의 길 묵묵히 걸어왔으니

  하늘 아래 영원한 것도 있구나

 

  그대 살아생전에 만났던 사람 다 죽고 없지만

  그들은 모두 길 되어 있으리

  그들이 길 되었음을 그대 기록하였기에

  나 이제 집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혜초여

 

 

우린 ‘사람을 불쌍히 여겼던 사람이, 사람이 걸어간 길을 사랑했던 한 사람이’ 갔던 ‘그 길’을 찾아 나섰다. ‘그대 살아생전에 만났던 사람’들이 모두 죽어 된 ‘길’에서 그대는 새로운 인연으로 다시 태어나리라.